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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0-17
제목
제 5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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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세대에 바친다. : 살과 살에 대한 헌사
반이정 미술평론가
이 전시를 구성하는 두 축은 문신과 권투라 할 만한데, 나는 그 두 기호에 호감을 품어본 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같은 남성 기호품에 거리를 두며 살아온 편이니 말이다. 밋밋한 눈매에 저돌적인 표정으로 획일화된 권투선수의 캐릭터 역시 맘에 차지 않았다. 실존했던 권투 선수의 사진을 올린 화폭 위로 문신을 차용한 바느질로 문양과 문장을 새긴 이번 전시 작품들은 단도직입적인 미감을 담는데, 이처럼 미적 직설화법 또한 내가 평소 미술 현장에서 만나는 ‘의미 불분명’에 ‘형언 불가’한 작품들의 전반적인 기류와도 다른 결을 지녔다. 남궁호석의 개인전 출품작은 주제부터 표현 기법까지 내게 낯선 게 자명하다. 한데 내게 낯익은 질감을 주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다. 문신(x축)과 권투(y축)를 교차하는 z축이야말로 그의 작업의 핵심으로 보이는데, 그 z축이 내 성장기를 관통하는 무엇이어서 인 것 같다. 이젠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는 1980년대 세대 감성. 그것이 그 z축이다. 
남궁호석의 작업을 풀어낸 키워드를 뽑아내 어떻게 엮을지 구상하던 중,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1980년대 유행곡을 손쉽게 선곡해서 듣는 20대 초반 남자 승객을 봤고 일순간 실마리가 떠올랐다. 음악의 각 장르별로 그럭저럭 기본 계보 정도는 꿰뚫을 만큼 수중에 돈만 생기면 LP와 CD를 사는데 모조리 투자하며 보낸 나의 20대 시절. 스마트폰으로 오래전 유행가를 선곡하는 동시대 20대의 음악 청취 매너와 나의 20대 음반 수집 기행이 무상하게 대비되었다. 다리품을 팔고 고가를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음반 목록이라는 게 존재했던 때 나는 20대를 보냈다. 지난 시절 희소가치에 빛나던 거의 모든 음악을 이젠 유튜브에서 무료로 전곡을 듣게 된 시대가 왔으니, 지금 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집에 잔뜩 쌓아놓은 음반을 꺼내 드는 일이 없다시피 하다. 이처럼 급변한 매체환경이 지난 시절의 노동집약적 취향을 한순간 퇴물로 밀어낼 줄 누가 알았겠나. 문신과 권투라는 이 전시의 주제를 어떻게 풀지 구상하면서 ‘살과 살’ ‘유구한 역사’ ‘직설화법’ 같은 키워드를 거칠게 적다보니, 나와는 무관해 보였던 이 모두가 ‘되돌릴 수 없는 1980년대 세대 감성’과 연결된다는 결론에 당도했다. 

 

한 시절의 문화적 기억은 시장에서도 복고풍이라는 전략으로 되 팔리곤 한다. 중년 이상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송과 영화처럼 복고풍 문화상품이 출시되는 배경을 잘 알 것 같다. 하지만 동시대의 복고풍 상품은 그걸 소비할 동시대 감성에 최적화되기 마련이라 지난 시절의 날 것 그대로를 전할 순 없으며 공급자의 처지에서도 굳이 전달 할 의사가 없을 게 분명하다. 문신과 권투를 좋아하지 않고 작품의 직설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남궁호석의 작업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친밀감은, 대부분의 욕구를 온라인에서 해결하는 뉴미디어 세대를 향한 나의 위화감도 작용하는 걸 게다. 

권투와 문신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소급될 만큼 유구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둘이 번성한 때는 1970-80년대로 본다. 1980년대는 신군부가 출현한 원점인 1979년 이래 경제 발전, 컬러TV보급, 그리고 무수한 프로 스포츠의 창설 등이 집중적으로 맞물린 시대였다. 남궁호석이 이번 전시에서 인용한 다양한 국내 권투 영웅들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홍수환의 4전5기(1977), 장정구의 프로복싱 데뷔(1980)와 15차 방어 성공(1988), 경기도중 의식을 잃은 김득구의 뇌사(1982), 17차 방어 성공으로 한국 복싱사상 최다방어기록을 보유한 유명우의 전성기도 1980년대 이뤄졌고, 이 전시에서 허구적인 권투선수 캐릭터로 인용되는 이현세의 권투 만화 시리즈도 1983년 출간됐다(『야성의 링』, 『까치의 유리턱』, 『지옥의 링』). 

동일한 복고풍 감성을 환기하더라도 2018년 뉴미디어 시대의 견지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의 차이점은 결정적이다. 1990년대는 군정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었고, 더불어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기 시작한 때다. 무엇보다 1980년대를 차별적인 문화 감성의 시대로 만든 건 1990년대가 오늘날처럼 뉴미디어 세대 감성의 시발점이 된 PC통신을 전국에 보급하여 온라인 문화의 기반을 만든 시절이라는 사실에 있다. 1980년대를 ‘살과 살’ 문화의 최후의 보루로 부각시키는 최전선에 대중 스포츠 권투와 하위문화 문신이 자리하며 이 전시는 그 둘에 집중하고 있다. 

유년기의 끝물부터 청년기의 전반부까지 1980년대를 통과한 남궁호석이 어릴 적 성장한 무대는 동두천이었다. 그가 문신을 처음 접한 것도 유년기 때 동두천에서 본 ‘문신연구소’였으니, 문신과 ‘살과 살’이 맞닿는 문화는 그의 성장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기본 정서였던 셈이다. 

그의 마지막 개인전(2008)에서 이번 개인전까지 미술가로서 10년 공백은 그가 다른 시각예술로 전향한 과정이었다. 그는 마지막 개인전 한 해전인 2007년 문신 작업을 시작했고, 그 비중은 2009년경부터 더욱 커졌다. 수유리 작업실 시대(2007~2015)에 이어 논현동 작업실 시대(2016~)까지 전업 미술가보다 전문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 사이에 문신에 관한 단독 저서 <한국의 문신. 타투이스트가 전하는 타투 이야기>(2015)까지 펴낼 만큼 문신 전문가로 변신했다. 

문신은 미술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시각예술이다.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의 기획전 <아시아의 타투>(2017.1125~2018.0624 라이브러리파크 기획관3)을 가봤다. 아시아권의 문신 문화를 소개한 전시였는데 벽이나 캔버스가 아닌 인체에 새기는 이 고유한 시각예술의 역사에 주목했다. 이 전시에는 한국에 관한 기록도 보이지만 관련 자료나 사진은 하나도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해설을 읽자니 다른 아시아권에서 문신이 장식과 기복과 신분증 등 다양한 기능으로 쓰인 반면,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형벌과 낙인의 수단으로 쓰였기에 기록이 태부족하단다. 
“통증이 동반된 조형 활동을 통해 영구적인 흔적을 얻기 위한 의도적 행위” 

자신의 저서에서 남궁호석은 문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문신의 패션을 차용하되 통증과 영구 흔적을 제거한 판박이나 헤나가 문신과 견줄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보여주는 지문이다. 영구적인 흔적. 

그의 문신 이론서에선, 문신을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다양한 정체성의 연대기로 묘사하고 있다. 문신의 ‘지울 수 없는 성질’은 박해나 형벌(낙인)의 용도로 타인에게 사용되기도 했으나,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소신을 스스로 각인 시킬 목적으로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문신은 선원, 군인, 제소자, 범인, 폭력배처럼 특정 계층의 표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운동선수가 문신을 새기는 일이 없다시피 한 이유였다. 그러나 2000년대 전후로 스타 스포츠 선수들의 과시적인 문신이 유행을 타자 그런 견고한 편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신의 양면성은 공격적이고 과시적인 문신의 표면을 앞세워, 두렵고 왜소한 자신의 속내를 숨길 때에도 드러난다. 남궁호석의 저서에는 추락한 권투선수들이 재기를 할 때 자기 인체에 과시적인 문신을 새기는 사례들이 인용되어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문신의 처우가 달라진 것과 맞물려, 문신의 가장 상징적인 양면성을 꼽자면 국내에서 현행법상 문신 시술이 불법임에도 적극적으로 처벌하지 않는/없는 현실. 경계선에 문신이 위치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행법으로 차단하자니 수요는 높은 반면 위험은 실질적으로 낮으며, 문신에 대한 공동체의 가치관도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신, 권투, 1980년대. 이 모든 과거는 2000년대 이후를 지배한 온라인 문화 감성 이전까지의 오프라인 감성(살과 살)과 연관 있다. 문신, 권투, 1980년대를 포괄적으로 재현한 남궁호석의 이번 개인전 출품작의 면면도 오프라인 감성이나 과거사와 연을 맺고 있다. 

황학동에서 헐값에 구입한 전투복, 청바지, 교련복, 성가복 같은 구제의류는 지금 동시대의 일상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과거사를 구성한 한 장면들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권투선수 알렉시스 아르게요의 팔에 레터링 문신을 차용한 자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처럼 절박한 존재론적 다짐도 삭제할 수 없는 오프라인 감성과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택된 다른 권투 영웅의 인체에 자수로 올린 표범(김상현), 지나간 유행가와 학(김득구), 장미(김성준), 독수리(살바도르 산체스), 둘리(장정구)도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을 환기시키는 점에선 1980년대 세대에게 동일한 공감 효과를 만들 것이다. 

문신 기법을 자수로 차용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권투인데, 권투는 선수들의 출신 배경 탓에 가난한 사람의 입신양명과 등가로 이해되었으며, 입지적적 연승 기록을 추앙하는 팬덤 현상이나,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생명을 담보로 투기 종목 고유의 ‘목숨을 건 승부 방식’ 때문에 1980년대 세대에겐 자기개발의 가이드 같은 성격도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 영광스런 과거사에 대한 환기와 함께, 그것이 과거의 영광인 점도 주목한다. 권투는 1980년대 전성기를 끝으로 1980년대 후반 한국의 경제발전과 뒤이은 민주화로 인해, 권투 고유의 불굴의 투지가 일반인에게 더는 먹히지 않게 되자 야구나 축구 같은 프로 스포츠에 밀려 사양 스포츠로 주저앉았으니 말이다. 

타투이스트 남궁호석은 국내 문신 업계에서 인물 타투 묘사로 차별화된 인물이다. 이는 회화의 원점을 환기시키는 점에서 다시 과거사와 맞닿아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부모 사진이나 자신의 아이 사진을 들고 온 손님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인체에 부모와 아이 또는 대중 스타들의 얼굴을 새긴다. 고객의 요구를 인체에 각인시키는 이 작업은 수요자의 바람에 최적화된 아주 오래 전 회화의 기능과도 겹쳐 보인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는 전근대적 통치자들처럼 애첩들을 거느렸고, 유독 총애한 14세 소녀 오머피 양의 나신을 화가에게 그리도록 명했다. 로코코 시대 최고 장식화가 부셰는 루이 15세의 어린 애첩의 알몸을 소파 쿠션 위로 자연스럽게 엎어져 누운 포즈로 묘사했다. 후일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는 이 그림을 보고 "욕망의 신선함을 더욱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평했다. 아마 화가는 사적 공간에서 소녀와 밀회를 나눌 루이 15세의 독점적 즐거움의 조건, 즉 소녀 특유의 미숙한 애교의 순간이 벗은 여체 위로 중첩되도록 의도했을 게다. 루이 15세는 애첩 오머피 양의 최상의 상태를 화면 속에 고정시키길 원했을 게다. 

최고 전성기를 누리다 시대 변화와 함께 향수의 스포츠로 추억되는 권투, 낙인과 소신, 형벌과 패션, 의술과 미술 사이를 오가는 양면적인 시각예술 문신, 그 둘을 결합시킨 남궁호석의 2018년 전시 작업은 1980년대 세대가 체험으로 아는 ‘살과 살’의 감성을 위한 헌사다. 동시대의 뉴미디어 감각과 유행에는 일견 밀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 중요한 사건이란 ‘살과 살’이 맞닿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니까. 아직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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